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자발적 퇴사자도 사람이다 –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약간의 전략과 많은 체념

by 인포걸스 2025. 6. 12.

퇴사했다.
정확히 말하면, 자발적으로 퇴사했다.
그러니까 뭐랄까, 회사에서 쫓겨난 것도 아니고, 해고 통보를 받은 것도 아니다.
그냥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 존재가 이 회사를 떠나야만 더 이상 가벼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걸어 들어가서, 조용히 사직서를 냈다.
제목은 ‘사직서’, 내용은 ‘자의로 퇴사합니다’, 날짜 쓰고 도장 찍었다.
그걸 인사팀에 건넸다.
인사팀 직원이 물었다.
“혹시 다음 직장은 정해지셨어요?”
나는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아뇨, 정한 건 없고요… 아무래도 저 자신과 시간을 좀 보내보려구요.”

그 순간, 그녀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은 당분간 무직이겠구나.

1. 퇴사 이후의 진실 – ‘실업자’는 어감이 너무 무겁다

퇴사 후 나는 스스로를 '자유인'이라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국가의 시선은 좀 다르다.
국가는 나를 실업자라고 불렀다.
그리고 나는 아주 절실히 깨달았다.
실업급여라는 단어가, 얼마나 간절하고도 아름다운 언어인지.

문제는 하나.
나는 ‘자발적으로 퇴사한 자’다.
즉, 실업급여를 못 받는다는 전설 속 주인공이다.

하지만 나는 단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고용보험법은 아주 다정하게 이렇게 말한다.

“자발적 퇴사자라도 정당한 이직 사유가 있으면 실업급여 수급이 가능합니다.”

그래, 나에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매일 10시간 넘게 일하면서도 초과수당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회식은 매주 강제였고, 주말 업무 지시도 일상이었다.
심지어 회의 중에 내 의견을 말하면, 상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그 생각으로 매출이 얼마나 올랐지?”

정당한 사유였다. 나만 몰랐을 뿐.

2. 실업급여란 무엇인가 – 국가가 주는 최소한의 생존수당

실업급여는 공식 명칭으로는 구직급여다.
즉, **“일을 안 해서 주는 돈”이 아니라 “다시 일할 사람에게 주는 돈”**이다.
당연히 전제 조건이 있다.

  •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었어야 한다. (자영업자는 제외)
  • 180일 이상 근무했어야 한다.
  • 정당한 이직 사유가 있어야 한다.
  • 구직 의사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즉, "퇴사했으니 좀 쉴게요”라고 말하면 안 된다.
국가는 당신이 지금 쉬고 있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3. ‘정당한 이직 사유’란 무엇인가 – 말하자면 퇴사의 명분

다음은 고용노동부가 인정하는 대표적인 ‘정당한 이직 사유’다:

  • 임금 체불
  • 근로조건 위반 (과도한 야근, 휴게시간 미제공 등)
  • 직장 내 괴롭힘, 따돌림
  • 건강 악화로 인한 퇴사
  • 가족 간병
  • 사업장 이전으로 인한 통근 불가
  • 계약직인데 계약 갱신 거절
  • 육아휴직 후 복직 거절

이 외에도 다양한 케이스가 있고, 고용센터에서 개별 사정을 판단해준다.
즉, 모든 자발적 퇴사는 똑같지 않다.
우리는 ‘억지로 버티다 나왔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그러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4. 증거가 필요하다 – 슬픈 이별에는 문서가 남는다

슬픈 사랑이 끝나면 사진이 남고, 슬픈 직장생활이 끝나면 증빙자료가 남는다.

  • 임금체불 → 급여명세서, 통장 입금 내역
  • 괴롭힘 → 문자, 이메일, 대화 녹음 (합법적일 것)
  • 건강 문제 → 진단서, 병원 진료 기록
  • 가족 간병 → 가족관계증명서 + 병원 기록

이 모든 걸 미리, 퇴사 전에 챙기는 게 좋다.
하지만 퇴사 후에도 최대한 수집해보자.
고용센터는 문서로 설득된다. 감정으로는 안 된다.
눈물은 그들 시스템에 저장되지 않는다.

5. 실업급여 신청 절차 – 절차는 귀찮지만 규칙은 있다

이제 본론이다.
자, 자발적 퇴사자여, 다음 단계를 밟아보자.


① 워크넷 구직 등록

  • 워크넷 사이트 접속 → 회원가입
  • 구직 등록 → 이력서 작성
  • “나는 일할 의지가 있다”는 디지털적 외침이다.

② 실업급여 교육 수강

  • 고용보험 사이트에서 실업급여 수급자 교육을 듣는다.
  • 약 30~40분.
  • 이 교육을 듣고 나면, ‘실업자의 길’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③ 고용센터 방문 예약

  • 고용센터에 방문예약을 하고, 증빙서류를 들고 직접 찾아간다.
  • 상담사가 당신의 퇴사가 정당했는지 판단한다.
  • 인정받으면, 수급자격 인정 통지서를 받는다.

④ 구직활동 보고

  • 매월 1~2회 이상 구직활동을 해야 한다.
  • 이력서 제출, 면접, 직업훈련 등
  • 이걸 인터넷으로 매달 보고해야 실업급여가 계속 지급된다.

⑤ 실업급여 수령

  • 처음 실업급여는 퇴사 후 약 1.5개월쯤 뒤에 지급된다.
  • 금액은 평균 임금의 60%, 상한선 있음
  • 수급 기간: 최소 120일 ~ 최대 270일

6. 나의 작은 팁 – 사람은 쉽게 포기하지만, 사회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 실업급여를 퇴사 후 12개월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
  • 퇴사 사유는 회사로부터 확인서를 받을 수 있다. (이직확인서)
  • 회사가 협조하지 않으면 고용센터에 말하자. 대신해준다.
  • 면접을 보러 가거나 직업훈련을 받으면 교통비와 식비 일부도 지원되는 경우가 있다.

7. 마지막으로 – 퇴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나는 아직도 무직이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실업급여는 결코 ‘공짜 돈’이 아니다.
그건 나와 같은 이들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벌기 위해 받는 사회의 약속이다.

누가 뭐래도,
자발적 퇴사자도 사람이다.
그도 쌀은 먹고 살아야 한다.
그도 다시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실업급여는 그 시작의 불씨다.
이왕 받는 거, 당당하게 받자.
그리고, 언젠가 다시 내 이름으로 일할 수 있는 날을 꿈꾸자.